9쪽
당신과 나는 능수벚나무의 바깥으로 나왔다_「분홍의 경첩」
김윤아가 노랫말로 부르기도 한 경구,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시작으로 <당신의 아름다움> 등 믿음직한 시를 발표한 시인 조용미의 여덟번째 시집. 비가 오면 초록빛으로 반짝이던 나뭇잎은 어두워진다. 갑자기 만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언어들. 깊은 초록빛 언어로 고유의 아름다움, 생의 정취를 빚어낸다.
짧고 무의미하지만 두고두고 환기되는 어떤 미적 체험의 순간이 있다. 그래서 그 무의미함이 무의미를 뛰어넘는 심미적 경험이 되는 신비한 일이 드물게 일어난다. 빈 가지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들, 누군가와 함께 보았던 어둠 속 폐사지의 삼층석탑, 차창으로 지나치며 얼핏 바라본 과수원의 과일을 감싸고 있던 누런 종이들이 내뿜는 기운, 그런 것들에 나는 잔혹한 아름다움을 느끼며 몸서리치곤 했다.
_‘뒤표지 글’ 부분
여름을 만난 문장
9쪽
당신과 나는 능수벚나무의 바깥으로 나왔다_「분홍의 경첩」
10쪽
깊은 어둠으로 가기까지의 그 수많은 초록의 계단들에 나는 늘 매혹당했다_「초록의 어두운 부분」
11쪽
저 연둣빛 어둑함과 으스름한 초록 사이 여름이 계속되는 동안 알 수 없는 마음들이 신경성 위염을 앓고 있다_「초록의 어두운 부분」
23쪽
수국이 비를 내리게 한다고 믿은 적 있다_「여름의 저녁은 수국의 빛으로 어두워지기에」
28쪽
빗물에 번쩍이는 초록 잎들의 숨을 나도 쉬어볼까 했는데_「식물의 기분」
38쪽
장대비에 튕겨 나간 초록들이 아스팔트에 흥건하다_「연두의 습관」
66쪽
무엇이 이토록 견딜 수 없는가
더 높이 뛰어오른다
눈이 부셔 앞이 캄캄해지는 순간
_「숭어」
68쪽
나무의 심장은 연약하다 나는 내 무용한 뜨거움을 조금 덜어내어 나무에게 준다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을_「초록의 성분」
109쪽
빈틈없는 현실 세계인, 세상의 높고 낮고 넓고 깊은 색의 심연을 나는 오래도록 바라본다_「색채감」
다음 여름 책은 6월 15일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