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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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박연준 지음 / 문학동네

"시인으로 20년, 박연준 신작 시집"

스무 살의 나는 하루에도 아홉 번씩 죽었다
서른 살의 나는 이따금 생각나면 죽었다
마흔 살의 나는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
<시인하다>

시인으로 20년을 보낸 박연준이 5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을 냈다. 산문 <듣는 사람>(2024), <고용한 포옹>(2023)과 소설 <여름과 루비>(2022)등을 발표하며 시의 안팎을 오가는 사이 스무 살에서 마흔 살로 시간이 갔다. 많은 죽음이 지나가니 '하루에도 아홉 번씩' 죽던 마음은 이제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

유별난 슬픔이 잔잔해진 곳에서 화자는 이제 작은 것들을 본다. '이제부터// 작은 것에만 복무하기로 한다'(<유월 정원>)는 다짐으로 살아남은 자의 책무인 것처럼 작은 것들과 눈을 맞춘다. 절절 끓는 이에겐 부드러워질 시간이 기필코 올 것임을, 이미 액체로 녹은 이에겐 더 작아지고 더 순해져 기화할 시간이 반드시 올 것임을 예감하는 말과 함께 시의 리듬으로 말소리가 나직나직 작아진다.

끓여서, 잊는 거죠
질긴 시간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감각이 액체로 녹을 때까지

<나는 당신의 기일(忌日)을 공들여 잊는다> - 시 MD 김효선

이 책의 한 문장

공책을 펼치면 거기 작은 인간을 위한 광장 납작하게,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는 이름들 사소한 명단이 걸어다닌다 작은 이름표를 달고 작게 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