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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가다
김중일

그해 그는 바람이 되었습니다.

그해 나는 바람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껏 전국 곳곳에 떨어뜨린 머리카락들이 밤마다 한데 모여 바람이 되었습니다.

바람이 되어 다시 길어지는 내 머리카락 끝에 부딪쳤습니다.

첩첩산중 키 작은 나무 한그루, 이파리 한잎의 그늘이 되었습니다.

밤새 불어나 더 세차게 흘러가는 물결이 되었습니다.


바람이 얼굴에 부딪치는 건 내가 불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세상의 첫날부터 바람은, 지금껏 우두커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공중이 입은 옷깃으로 항시 멈춰 있었습니다.

그 바람이 몸에 부딪치는 건 바람이 아니라 내가 불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람이 머리카락에, 얼굴에, 목덜미에, 손등에 스치는 건 내가 아주 빠르게 불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그날의 바람처럼 붙박여 있는데, 내 몸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불어가고 있습니다.

바위 같은 바람에 쓸리고 부딪치며 온몸이 불어갑니다. 머리카락이 길어지며 불어갑니다. 손톱이 길어지며 불어갑니다. 내가 불어가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바람에 어깨를 부딪치며 나무들이 불어갑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새들을 퉤퉤 뱉어가며 불어갑니다.

그해에는 함께 가던 그가 바람처럼 완전히 멈췄습니다.

그해부터 함께 가던 그가 바람처럼 매 순간 내게 부딪쳐옵니다.

그 때문에 내 몸이 이 순간에도 불어간다는 것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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