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은 있다
세수를 하고 수건을 집어 들 때나 젖은 손으로
쌀을 씻을 때 갓 지은 밥을 풀 때
검정을 본다
수시로 고개를 드는 검정
방 곳곳에 숨어 있다 내가 다가가면 깜짝 놀래는 검정
너는 대체 누구니?
늦은 시각 들른 어느 상가(喪家)에서 묻어온 것인지
제 몸만 한 개미를 지고 가던 개미인지 장지(葬地)의 흙인지
손을 뻗어 잡으려 하면 이내 도망쳐버리는 검정
뜻 모를 이름의 벌레처럼 수많은 발을 달고서
나는 공연히 이불 밑이나 호주머니 속을 들춰보게 되고
비명을 지르게 되고
검정은 없지만, 분명
검정은 있다
밤이면 쓰다 만 일기 속에 슬그머니 다가와 속삭인다
너는 대체 누구니?
버려야겠다 이 어두운 방을,
생각하지만
문을 열면 이내 성큼 따라나서는 검정
검정은 나를 입고 잠시 외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