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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숲
김성규

한 소녀가 길을 잃고 숲으로 걸어들어갔다네

유리노루가 꽁지를 감추며 달아나는 유리언덕

그날 무리를 지은 유리새가 숲을 돌며 노래 불렀다네


유리이끼 옆에 신발을 모아놓고

작고 말랑말랑한 맨발로 유리에 찔린 발걸음을 옮기며

유리나무를 보며 황홀에 빠진

소녀는 단 한번 숲으로 걸어들어갔다네


빛처럼 흩뿌리는 유리새의 노래를 들으며

유리가루가 혈관을 할퀴는 황홀함에 취해

소녀는 작고 붉은 발자국을 찍고 있었다네

세상의 모든 것을 반사해내는 유리숲에서

유리장인은 넋을 잃고 사방을 둘러보았네


늙어버린 자신처럼 꽃 피우지 못하는 나뭇가지 사이

나뭇잎들은 공중에 핏방울을 매달고

쓰다듬을 때마다 손가락으로 생명을 튕기듯

투명해진 소녀의 몸을 향해 손을 뻗었다네

핏방울이 오솔길을 만들며 이어지는 유리숲


이제는 백발이 되어버린 유리장인이 눈물을 흘렸다네

발목에서 수많은 꽃송이가 피어나

작은 옹달샘을 만들며 누워 있는

정맥처럼 숨을 쉬는 소녀를 껴안고 울었다네

소녀의 눈썹처럼 유리깃털이 쏟아졌다네

그날 무리를 지은 유리새가 숲을 떠나며 노래 불렀네


자신이 빚어놓은 숲을 처음으로 보게 되는 날

유리숲에 단 한번 꽃이 핀다네

유리숲에 단 한번 꽃이 피는 날

유리강이 넘쳐 영원 속으로 유리새들이 날개를 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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