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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없이 걸을 만한 비가 내리는 날
문현식

우산을 펴지 않고 걸어가는 길

만나자는 말에 대답하지 않은 날

골목 끄트머리에서 혼잣말이 소곤소곤 저절로 나오는 날

—너

—그거 알아

—사실은

얕게 고인 물 살짝살짝 밟으며 걷는 길

은행잎에서 은행잎으로 발 옮기며 걷는 길

촉촉한 머리카락이 기분 좋은 날

갈 곳 없이 걸어도 기분 좋은 길

우산 없이 걸을 만한 비가 내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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